[풋볼리스트=강원] 유지선 기자= 심각한 부상과 긴 재활기간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 선수가 적잖지만, 오히려 더 강해져서 그라운드에 돌아온 선수가 있다. 긴 공백을 딛고 올 시즌 강원FC의 중심이 된 한국영(3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영에게 2018년은 되돌리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2017년 가을, 왼쪽 후방십자인대와 후외측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고, 다른 사람의 인대를 이식해 연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2018년 그는 단 한 번도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활에 몰두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강원의 클럽하우스 ‘오렌지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영은 “당시에는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영은 올 시즌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욱 강해졌다. 보란 듯 부활에 성공했다. K리그 개막 후 치른 23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섰다. 중원에서 중심을 잡아주며 공수에 걸쳐 강원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강원에서 올 시즌 리그 전 경기 출전을 기록 중인 선수는 한국영이 유일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직후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땀방울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웠던 초록 잔디를 마음껏 누비고 있는 ‘독종’ 한국영을 만나, 긴 재활기간을 견뎌낸 이야기와 오랜 기다림 끝에 강원에서 꽃피우고 있는 축구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꿈을 들어봤다.

# 긴 재활을 견디고 꿋꿋하게 일어선 독종

- 올 시즌 강원 선수단 중 유일하게 전 경기에 출전하고 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부상으로 지난 시즌을 통으로 날렸고,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시즌 내내 재활에만 매진했었어요. 그때 너무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매 순간이 감사하죠. 오래 쉬었던 만큼 팀을 위해 더 최선을 다해야겠단 생각입니다. 아플 때도 있고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력 무장을 하면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 덕분에 아직까지는 전 경기 출장이란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 김병수 감독님은 한국영 선수를 혹사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원래 지난해 10월쯤 복귀할 수 있었는데, 감독님이 부상을 당한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셔서인지 ‘다음 시즌을 목표로 삼아서 천천히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부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배려해주신 거죠. 그 덕분에 저도 조급함을 버리고 착실하게 재활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 1년 넘게 재활에 매진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을텐데?

사실 수술 직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수술하면 다 누워 있는거지’라는 생각이었는데, 휠체어 타는 시간이 길어지고 목발 짚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공백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예전 폼을 찾을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어요.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이 더 깊어졌고, 조금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됐어요.

- 두려움도 많았던 긴 재활 기간을 어떻게 견뎌냈나요?

저는 일부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어요. 생각해보니 내 몸만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간이더라고요. 우선 시간을 조금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시간대 별로 계획을 세웠어요. 이제는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누워서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고 오전과 오후 운동에만 전념했는데, 덕분에 지금은 사진을 봐도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피지컬적으로 훨씬 강해진 것 같아요.

- 역시 독종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네요. 한국영 선수를 독종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 스스로도 인정하시나요?

반박할 수는 없네요.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제가 생각해도 독종이다 싶었던 때는 학창시절, 특히 중학교 때가 절정이었어요. 그때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개인운동을 하다가 6시에 팀 훈련에 참여했거든요. 단체 생활을 했는데, 새벽에 나갈 때 동료 선수들이 깰까봐 전날 밤 옷을 미리 준비해두고 매일같이 식당에 이불을 깔고 잤어요.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는 10분 쉬는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자전거 튜브를 매달고 내내 달렸어요. 땀을 흘린 채로 다시 수업에 들어가고 다시 옥상에 올라가는 것을 반복했죠. 그 시절에는 정말 축구밖에 몰랐던 것 같아요. 제가 축구를 늦게 시작했는데, 덕분에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 오랜 기다림 끝에 만개하고 있는 한국영

- 긴 재활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김병수 감독님의 축구에 잘 녹아들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처음 복귀했을 땐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어요. 컨디션 올리는 것, 그리고 감독님 축구에 적응하는 것이 저에겐 중요한 과제였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적응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거든요. 저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그라운드 위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그런 부분이 지금은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가 이제 절반 정도 올라섰다고 생각해요. 남은 절반을 어떻게 완성해갈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실제로 잘 나가다가 3연패를 한 적도 있었고, 지금 분위기가 좋긴 하지만 또 언제 연패에 빠질지 모르잖아요. 안심할 수는 없어요. 마지막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그래도 지금까지는 날카로운 전진 패스로 강원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영 선수의 패스 실력에 놀라워하는 팬들도 많더라고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일본, 카타르에서 프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제가 소속팀에서 뛰는 경기를 보진 못하셨을 거예요.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던 건 대표팀뿐이었는데, 사실 대표팀에서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죠. 수비적인 역할 위주였는데, 어떻게 보면 대표팀에서는 목줄이 채워진 듯한 느낌이었어요. 물론 부정적인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 저는 감독님이 부여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선수의 도리라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감독님의 주문에 충실하려는 편이에요. 날카로운 패스가 많아진 것도 지금 감독님에게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저절로 그런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요.

- 목줄이 채워진 듯한 느낌,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라고 했지만 과거 대표팀에서 제한된 역할로 인한 아쉬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당시 대표팀에서는 공을 받으면 제가 어떻게 하기보다 재빨리 주변 선수에게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수비적인 역할만 부여받았는데, 제가 그렇게 해야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쉬움은 없었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더라도 팀 내부에서 인정받고,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욕을 많이 먹기도 했죠.(웃음) 대표팀 때 제가 한 경기들을 보면, 제가 봐도 비난받을 만한 경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아쉽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제 축구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정말 의미 있는 하루하루였습니다.

- 어떻게 보면 지금 김병수 감독님이 한국영 선수에게 딱 맞는 옷을 입혔다고 볼 수 있겠네요.

네. 저도 지금의 자리가 가장 편안해요. 수비와 공격 양쪽을 오가면서 플레이하는 것이 저한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감독님도 저한테 그런 역할을 원하세요. 감독님이 올 시즌 저를 처음 보셨는데, 제가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파악하듯 감독님도 초반에는 저를 관찰하고 체크하셨을 거예요. 감독님은 모든 선수들의 색깔과 어울리는 자리를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요.

# 지도자 생각은 전혀 없던 한국영이 달라졌다?

- 김병수 감독님의 축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잖아요. 초반에는 적응하는 데 애를 먹진 않았나요?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축구 전술과 계획이 정말 다양해요. 축구 열정이 대단하시거든요. 항상 축구를 보시고, 전술판으로 이것저것 작전 체크도 하시고... 그래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축구는 결국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골을 넣고 골을 먹지 않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세밀한 부분에 신경 쓰자는 생각으로 훈련했어요. 그래서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 ‘병수볼’이 올 시즌 화제인데, 강원 축구를 글이나 영상으로 분석한 팬들도 많더라고요. 혹시 보셨나요?

네. 몇 번 봤어요. 요즘은 팬 분들도 워낙 많은 지식을 갖고 계시잖아요. 맞는 부분도 많더라고요. 하지만 감독님의 생각은 다양하고, 구상하시는 전술도 참 많거든요. 한 경기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저희 팀을 절대 알 수 없을 거예요.(웃음) 팀이 지금보다 완전해지면 그땐 분석이 훨씬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선수들이 ‘김병수 감독님을 만나서 축구 보는 눈을 떴다’는 말을 자주 하더라고요. 한국영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동계훈련 때는 ‘아, 이래도 되는 건가? 강등 싸움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했던 거죠. 연습경기에서 결과가 좋지 않고 내용도 별로고, 모든 것을 잃는 경기가 많았거든요. 자체 훈련을 할 때도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도 감독님은 뚝심 있게 밀고 나가시더라고요. 저희를 믿으셨고, 선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려고 하셨어요. 저만 못 믿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사실 감독이란 직업이 성적을 내야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동안 하다가 안 되면 금방 변화를 주기도 하는데, 김병수 감독님은 자신이 생각하는 축구 철학을 쭉 밀고 나가시는 것이 저에겐 굉장히 신선했어요.

-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초반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지금,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저도 신기해요. 개막전은 그야말로 망쳤거든요. 제가 아마 가장 좌절했을 거예요. 1년 3개월 정도 재활만 하다가 복귀했는데 경기 결과가 좋지 않았고, 제 경기력도 최악이었거든요. 동계훈련을 했을 땐 컨디션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올 시즌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개막전을 뛰니 뭔가 한대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충격 받은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에요. 상주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공백은 무시 못 하는 구나. 은퇴도 생각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래도 그 경기를 통해 마음을 고쳐먹었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선수들과 힘을 모으다 보니 두 번째 경기부터는 좋아지더라고요. 물론 패할 때도 있었지만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거든요. 선수들이 감독님의 축구를 조금씩 알게 되고, 색깔을 찾아가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요즘은 어긋나거나 어색한 것이 없어지고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그렇게 조금씩 쌓아가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라운드 밖에서 김병수 감독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말수가 없고 쑥스러움도 많으세요. 그런데 운동장에서는 누구보다 크게 소리치면서 지도하세요. 완전히 달라지십니다. 저희는 경기 전 잠깐 하는 미팅 외에는 따로 미팅을 거의 하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훈련장에서 가장 열심히 설명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동안 지도자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은퇴를 하면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서 그냥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축구 연관된 일은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이었죠. 그런데 김병수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이런 좋은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다보면, 나도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은 지도자를 만났지만 이런 생각은 처음 해봤어요. 물론 아직까지는 은퇴 후 축구 관련 일을 할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조금씩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 다른 감독님들과 차이를 느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느꼈나요?

축구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현장에 있을 때 가장 많은 걸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감독님은 오프 상태에서 온 상태가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 감독님이 생각하는 철학들을 축구에 접목시켜 설명하세요. 사실 그렇게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감독님은 없었어요. 해외에서도 많은 분들의 지도를 받아봤지만, 성인이고 완성된 선수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포메이션이나 전술을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편인데, 감독님은 더 깊숙이 들어가 하나하나 체크해주세요. 정말 큰 도움이 돼요.

-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올 시즌 개막 전에 핸드폰에 적어둔 4가지 목표가 있어요. 30경기 출장, 공격 포인트 5개, 부상 없이 뛰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대표팀 재승선이요. 제가 대표팀에 발탁됐을 당시에는 일본과 카타르에서 해외생활을 할 당시였는데, 이제는 강원 소속으로도 한번 대표팀에 승선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웃음)

- 기성용 선수가 은퇴하면서 대표팀 중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대표팀이 워낙 잘하고 있어서...게다가 어린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조금씩 세대교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었잖아요. 일단 팀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대표팀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면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살짝 무심한 듯, 하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마 모든 선수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축구 팬으로서 대표팀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뛰어난 지도력의 감독님에 신구 조화가 잘 이뤄진 선수들까지, 그러나 강원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홈구장 같지 않은 홈구장일 것 같아요. 클럽하우스(강릉)와 홈경기장(춘천)이 떨어져있는데 선수 입장에서 느끼는 고충이 있나요?

성남, 서울, 수원 이런 팀들이 춘천으로 원정을 오는 것이 저희보다 훨씬 가까워요. 주말이 끼게 되면 이동시간이 더 걸리고요. 매 경기 원정 같은 느낌이 드니까 사실 좀 힘들죠.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선수들도 힘을 내면서 더 열심히 하고 있는데, 홈경기 같은 홈경기가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지역이 어느 곳이든 저희만의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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