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 축구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한 뒤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이탈리아의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승우를 비롯한 2019/2020시즌의 경기와 이슈를 전한다. <편집자 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맞는 전술적 토대를 제공하는 건 ‘전술가’ 마우리치오 사리 유벤투스 감독에게도 까다로운 일이다.

25일(한국시간) 이탈리아의 파르마에 위치한 스타디오 에니오 타르디니에서 세리에A 1라운드를 가진 유벤투스가 파르마를 1-0으로 꺾었다. 유벤투스는 슛 시도 횟수에서 14회 대 8회로 근소한 우세에 그쳤다. 골은 전반 21분 세트피스에 이어진 혼전 상황에서 센터백 조르조 키엘리니가 터뜨렸다. 일반적인 오픈 플레이를 통해 만든 골은 없었다.

폐렴 증세로 벤치를 지키진 못했지만, 유벤투스의 전술을 설계한 건 사리 감독이었다. 이 전술에서 호날두의 자리를 찾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사리 감독이 전술적으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뒤 지도한 나폴리와 첼시에는 각각 로렌초 인시녜와 에덴 아자르가 있었다. 공을 잡고 상대 진영을 헤집으며 직접 득점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선수들이다.

반면 유벤투스는 나폴리, 첼시보다 더 탄탄한 전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만 창의적인 선수가 부족하다. 팀의 에이스에 해당하는 호날두는 창의성을 담당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 마무리 슛만 날리는 데 최적화된 선수다.

게다가 새로 영입된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 지난 시즌 멤버만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하면서, 유벤투스는 단 한 명도 창의적인 공격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스리톱은 호날두, 곤살로 이과인, 더글라스 코스타가 형성했다.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미랄렘 퍄니치를 미드필더 블래즈 마튀디, 자미 케디라가 보좌했다. 포백은 알렉스 산드루,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 마티아 데실리오로 짜였다. 골키퍼는 보이치에흐 슈쳉스니가 맡았다.

축구 통계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이 매긴 호날두의 개막전 평점은 6.5점이었다. 유벤투스 선발 멤버 중 미드필더 자미 케디라 다음으로 낮은 점수다. 이 평점이 실제 경기력을 모두 반영하는 건 아니지만, 세부 기록을 토대로 도출되는 수치이기 때문에 경기 관여도가 높을수록 평점이 올라간다. 그런데 아예 공을 적게 잡은 케디라(개인 점유율 3.9%)와 달리, 호날두는 공을 자주 만지고도(개인 점유율 4.9%) 평점이 낮았다. 결국 플레이의 영양가는 호날두가 가장 낮았다고 볼 수 있다. 슛을 7회나 날렸지만 그 중 유효슛은 2회에 불과했다는 점도 반영된 점수다.

반대로 유벤투스 공격진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한 공격 자원은 코스타였다. 오른쪽 윙어 코스타는 ‘부상만 없다면 믿을맨’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코스타는 거의 프리롤에 가까웠다. 오른쪽 측면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속공 상황에서는 중앙과 왼쪽까지 넘나들며 공격을 주도했다. 코스타의 고속 드리블에 이어 만들어진 슈팅 기회를 다른 선수들이 받아먹는 패턴이 자주 나왔다. 코스타는 패스 성공률 93%, 드리블 성공 횟수 5회로 두 부문 모두 선발 선수 중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사리 감독은 인시녜, 아자르에 이은 ‘돌격대장’ 역할을 코스타에게 맡긴 셈이다. 코스타는 인시녜나 아자르에 비해 에이스라는 이미지가 부족했고, 좀 더 측면에서 드리블과 왼발 킥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선수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코스타가 보여준 모습은 사리 감독 아래서 한층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코스타는 경기 후 “사리 감독과 코칭 스태프는 우릴 잘 준비시켜줬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다”며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잘 써먹는 사리 감독의 성향대로 퍄니치가 한층 좋은 활약을 했다. 좌우에 배치된 마튀디와 케디라는 창의성이 부족한 가운데, 퍄니치가 적극적으로 전진하며 중요한 패스를 책임졌다. 퍄니치 혼자 이 경기의 전체 점유율 중 10.9%를 차지했다.

문제는 코스타가 빠진 뒤 불거졌다. 그나마 퍄니치와 코스타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진행되던 유벤투스의 경기는 후반 26분 코스타가 경미한 부상으로 빠지고 후안 콰드라도가 들어오자 급속도로 경색됐다. 그 전까지 유벤투스는 슛 시도에서 13회 대 6회로 앞서 있었으나, 코스타가 이탈한 뒤에는 1회 대 2회로 뒤쳐졌다. 뒤쳐졌다는 것도 문제지만 유벤투스 같은 팀이 추가시간 포함 25분 동안 슛을 단 2회 날리는 데 그쳤다는 건 문제였다. 곤살로 이과인 대신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를 투입한 마지막 교체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선수 구성을 볼 때, 오른쪽 윙어 자리에서 호날두 대신 돌격대장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는 코스타와 파울로 디발라 정도다. 디발라의 경우 유벤투스가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려 노력했으나 결국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본의 아니게 디발라가 팀에 남을 경우 윙어보다는 최전방을 두고 경쟁하는 쪽이 더 유력하다. 그렇다면 돌격대장은 부상이 잦은 코스타 한 명만 남는다.

유벤투스는 이번 시즌 영입한 아드리앙 라비오, 애런 램지, 마티스 더리흐트, 다닐루 등을 경기에 투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중 공격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줄 만한 선수는 없다. 사리 감독의 축구는 아직 유벤투스에 착 달라붙지 못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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