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이 내놓은 선수 명단과 발언을 보면, 남자 축구대표팀이 투톱에서 원톱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보인다.

30일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10월 A매치 소집병단 25명이 발표됐다. 10월 7일에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로 소집된 선수들은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두 경기를 치른다. 9일 화성으로 이동해 10일 오후 8시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스리랑카와 경기한다. 15일 오후 5시 30분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원정 경기를 갖는다.

 

해 보니까, 투톱보다 원톱이 낫더라

벤투 감독은 올해 1월 아시안컵을 마친 뒤 ‘월드컵 예선 모드’로 들어가면서 투톱을 적극 시험했다. 이때부터 친선경기를 5차례 치렀는데, 4-1-3-2 포메이션을 세 번 썼고, 스리백 위에 투톱이 있는 포메이션(3-4-1-2, 3-5-2)을 두 번 썼다.

그러나 실전이 되자 이야기가 달랐다. 지난달 10일 투르크메니스탄과 예선 첫 경기를 치르면서 기습적으로 4-3-3 포메이션을 구사했다. 이 변화가 잘 먹혔다. 상대의 허를 찌른 한국은 전반 13분 나상호의 선제골로 앞서갔다.

한국은 투르크메니스탄 상대로 일단 승기를 잡은 뒤 4-1-3-2 포메이션으로 돌아갔는데, 오히려 경기력이 뚝 떨어졌다. 벤투 감독의 말이다. “전반 30분 이후 좋은 경기를 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고 본다. 내가 포메이션을 바꿨다. 원톱이었던 팀을 투톱으로 바꿨다. 그 시점부터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3월에는 4-1-3-2 포메이션을 처음 도입했을 때는 만만찮은 팀 볼리비아, 콜롬비아 상대로 연승을 거두며 희망을 보여줬다. 그러나 홈에서 열린 평가전이라 경기가 잘 풀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술이 딱히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 원정 실전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 모습을 노출하면서 벤투 감독의 고민이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벤투의 황태자, 남태희의 복귀 역시 4-2-3-1 가능성을 높인다

남태희의 복귀 역시 원톱 회귀 가능성을 높인다. 남태희는 벤투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코스타리카전 득점을 통해 ‘황태자’로 급부상했던 선수다.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오른쪽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남태희는 오랜 재활을 거쳐 지난달 부상을 털어냈고, 이후 가벼운 근육부상까지 이겨낸 끝에 이번 명단에서 포함됐다.

벤투 감독은 남태희의 가치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기술이 출중하다. 특히 중앙에서, 공격수 바로 아래 섀도 스트라이커로서 좋은 능력을 가진 선수다. 포메이션 변화를 줘서 4-3-3으로 경기할 때도 중앙 미드필더로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때로는 프리롤을 줘서 측면에서 중앙으로 공을 몰고 들어오도록 할 수 있다.”

남태희가 가장 빛나는 포진은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는 4-3-3의 중앙 미드필더일수도, 윙어를 쓰는 전술에서 측면을 맡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4-1-3-2는 아니다. 기존 4-1-3-2에 남태희를 끼워맞춘다면 투톱 중 한 자리 정도가 가능한데, 손흥민과 황의조 중 한 명을 남태희가 밀어내는 건 어렵다.

 

전술이 바뀐다면 이강인, 황인범의 입지도 변한다

원톱 기반 전술로 돌아가는 건 이강인에게도 호재라고 볼 수 있다. 이강인은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윙어를 쓰는 전술의 좌우 윙어 역시 어느 정도 수준급으로 소화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4-2-3-1의 2선에서 손흥민, 남태희, 이강인이 모두 공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강인은 현재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플레이메이커다. 최근에는 선발 출장까지 기록하면서 어엿한 성인 선수로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단순한 유망주로 간주하지 않고 출장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다.

전술 변화가 현실화된다면 4-1-3-2의 핵심인 황인범의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벤투 감독은 황인범에 대해 “각 순간마다 자기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져 있고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본인이 잘 이해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포지션마다, 전술적인 변화를 줄 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심지어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다”고 매우 높은 평가를 했다. 황인범의 경우 후방으로 물러나 정우영, 백승호 등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선발 출장 가능성은 언제나 높다. 다만 4-1-3-2를 쓸 때처럼 대체불가인 핵심 선수로 간주되진 않을 것이다.

혹은 투르크메니스탄전처럼 경기 중 자유자재로 4-1-3-2와 4-3-3을 오가는 것도 가능하다. 선발 라인업에 이재성, 나상호, 황인범 등 멀티 플레이어들이 포함된다면 전술 변화를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