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 축구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한 뒤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이탈리아의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유벤투스뿐 아니라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는 2019/2020시즌의 경기와 이슈를 전한다. <편집자 주>

마우리치오 사리 유벤투스 감독은 스리톱이 아닌 투톱, 테크니션이 아닌 블래즈 마튀디 등을 활용해 ‘사리볼’을 만들어간다.

지난 7일(한국시간) 밀라노의 쥐세페 메아차에서 ‘이탈리아 더비’를 치른 유벤투스가 인테르밀란에 2-1 승리를 거두며 선두로 올라섰다. 유벤투스가 6승 1무로 무패를 유지했다. 그동안 전승 중이던 인테르는 시즌 첫 패를 당하며 6승 1패로 2위가 됐다.

시즌 초반에는 인테르가 더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쥐세페 메아차에서 유벤투스가 승리했다는 건 다소 의외였다. 유벤투스는 소극적으로 버티다 ‘한 방’으로 승리한 게 아니었다. 슛 횟수에서 약 2배(18회 대 10회)로 앞섰고, 자연스레 골도 두 배 넣었다. 경기력의 승리였다.

사리 감독의 축구가 유벤투스에 서서히 이식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경기였다. 사리 감독의 집요한 세부전술, 경기를 주도하려는 철학은 이탈리아에서 독보적이다. 렌초 울리비에리 이탈리아축구지도자협회(AIAC) 회장은 사리 감독이 지휘하던 나폴리를 ‘이탈리아 축구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팀’으로 꼽기도 했다. 여기 비하면 안토니오 콘테 이탈리아 감독은 전술적으로 디테일이 다소 떨어지는 대신 동기부여와 시즌 운영에 강점이 있다. 이날은 사리 감독의 장점이 더 돋보였다.

유벤투스는 주전 윙어 더글라스 코스타가 부상당하고, 후안 콰드라도는 수비진 줄부상을 메우기 위해 풀백으로 이동한 상태다. 사리 감독이 나폴리 시절부터 즐겨 쓴 4-3-3 포메이션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사리는 그 이후 4-3-1-2 포메이션으로 전환했고, 오히려 경기력이 향상됐다.

사리 하면 스리톱이 먼저 떠오르기 쉽지만, 1부 감독으로서 처음 역량을 인정받았던 엠폴리 시절에는 4-3-1-2 포메이션을 썼다. 사리 감독은 이번 시즌 초반부터 유벤투스에서 4-3-3과 4-3-1-2를 병행할 거라고 예고한 바 있다.

어떤 포메이션을 쓰든 사리 감독의 철학은 큰 차이가 없다. 경기장 내 모든 선수가 고루 패스워크에 가담한다. 인테르의 경우 최전방의 로멜루 루카쿠와 라우타로 마르티네스는 역습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모험적인 패스를 해야 했다. 그래서 두 선수 모두 패스 성공률이 65% 이하였다. 반면 유벤투스의 선발 투톱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패스 성공률 95%, 파울로 디발라가 91%였다.

4-3-1-2라고 해서 공격형 미드필더 한 명의 창의성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미드필더 전원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축구를 선호한다. 공격진과 미드필더 중 적당한 위치에 있는 선수가 공간으로 빠지며 공을 받고, 나머지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공간을 채우며 대형을 유지한다. 앞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중용된 선수는 애런 램지였다. 인테르를 상대로는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가 선발로 뛰었고, 후반에 엠레 찬이 이 역할을 맡았다. 두 명 모두 키 패스(동료의 슛으로 이어진 패스)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팀 승리에는 문제가 없었다.

대신 결정적인 스루 패스는 미드필드 후방에서 전진하는 선수가 성공시켰다. 이날 유벤투스는 중앙 공격으로 두 골을 모두 만들어냈다. 선제골은 미랄렘 퍄니치의 스루 패스를 디발라가 마무리했고, 후반에는 더 세밀하고 정교한 패스 연결 끝에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스루 패스를 받아 곤살로 이과인이 득점했다. 인테르는 핸드볼 반칙으로 얻어낸 페널티킥 덕분에 한때 동점을 만들었을 뿐 필드골을 넣지 못했다.

사리 감독은 공격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수비 전술도 구체적으로 짜는 편이다. 이미 지난 시즌 수비력이 하향세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던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이번 시즌 부활해 조르조 키엘리니의 부상 공백을 메우고 있다. 센터백 중 왼쪽에 배치된 것이 생소해 어려움을 겪던 마티스 더리흐트는 최근 이탈리아 축구에 적응하며 점점 기대에 부응하는 중이다.

사리 감독은 기술이 평범한 대신 전술 지능이 좋은 블래즈 마튀디, 자미 케디라 등 기존 멤버들을 먼저 기용해 안정적으로 시즌을 운용하고 있다. 유벤투스는 더 강해질 기미가 보인다. 이미 선발과 벤치를 오가는 램지, 아직은 벤치에 머무르고 있는 아드리앙 라비오 등 신입 미드필더들이 본격적으로 전력에 합세하려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투톱이 정착되고 테크니션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디발라가 살아났다는 점 역시 호재다. 디발라는 아직 1골 2도움(컵대회 포함)으로 기록은 빈약하지만 최근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두 어시스트 모두 호날두에게 줬다는 점에서 두 선수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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