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 축구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한 뒤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이탈리아의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유벤투스뿐 아니라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는 2019/2020시즌의 경기와 이슈를 전한다. <편집자 주>

표면적으로는 유벤투스의 모든 구성원이 호날두를 옹호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은연중에 퍼지고 있다. 호날두의 기량이 여전하다면 도덕적 논란을 무시하고 우승의 주역으로 활용하면 된다. 문제는 34세 호날두가 매년 쇠퇴한다는 점이다.

11일(한국시간) 이탈리아의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세리에A 12라운드를 가진 유벤투스가 밀란에 1-0 승리를 거뒀다. 유벤투스는 10승 2무를 기록하며 선두를 유지했다.

호날두를 둘러싼 두 가지 화제가 있는 경기였다. 첫 번째는 후반 10분에 교체됐다는 사실에 불쾌해하며 먼저 라커룸으로 들어간 뒤 경기가 종료되기도 전 스타디움을 이탈했다는 점이다. 경기 후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은 호날두가 부상을 달고 뛰는 등 희생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두 번째는 호날두가 빠진 뒤에야 유벤투스가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밀란이 오히려 앞선 경기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호날두 중심의 역습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호날두 대신 들어온 디발라가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특유의 번뜩이는 테크닉과 허를 찌르는 오른발 슛으로 득점했다. 호날두 없이 곤살로 이과인과 디발라의 투톱이 더 잘 작동했다.

호날두의 표면적인 기록에는 큰 문제가 없다. 호날두는 세리에A 5골,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1골로 총 6골을 기록 중이다. 유벤투스 선수 중 가장 많은 골이다. 유벤투스는 호날두를 중심으로 세리에A와 UCL 조별리그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번 시즌 모든 대회에서 무패 행진 중이다.

다만 호날두에게 걸려 있는 거대한 기대, 그리고 호날두의 ‘유지비’를 충당하기 위해 희생한 다른 포지션의 경쟁력을 감안한다면 현재 경기력이 불충분하다. 호날두는 일반적인 경기가 아니라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해주길 바라며 영입한 선수다. 유벤투스는 세리에A에서 이미 8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나 같은 기간 UCL은 결승전 패배만 두 번 겪었을 뿐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UCL 통산 5회 우승을 기록한 호날두를 ‘우승 청부사’ 삼아 영입했다.

그러나 호날두의 점진적인 하락세는 지난 시즌부터 감지됐다. 시즌 총 득점은 상관없었다. 강팀 상대 경쟁력이 예전같지 않았다.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리그 2~5위 상대로 호날두는 7경기 3골을 기록(경기당 0.43)했다. 나쁘지 않은 득점력이지만 호날두의 시즌 득점력(경기당 0.68)에 비하면 강팀을 만났을 때 다소 약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시즌 UCL에서 호날두는 조별리그 아틀레티코마드리드전 해트트릭, 8강 아약스전에서 홈과 원정 모두 1골씩 기록하는 등 최소한의 제몫은 했다. 이 점 역시 보통 공격수일 때 좋은 활약이고, 호날두에 대한 기대를 감안하면 저조하다고 봐야 한다. 호날두의 지난 시즌 UCL 기록은 9경기 6골(경기당 0.67)이었다. 이는 경기당 득점력과 총 득점 어느쪽을 보든 8시즌 만에 최저 득점이었다. 맨유와 레알을 아울러 호날두가 UCL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 ‘고작’ 경기당 0.67골 정도에 그친 적은 없었다.

이번 시즌 호날두의 경기력 하락은 더 심상치 않다. 밀란전 무득점은 부상을 달고 뛴 여파로 볼 수 있지만, 현재까지 강팀 상대 성적과 UCL 성적이 지난 시즌 이하다. 유벤투스는 현재까지 세리에A에서 빅 매치로 볼 수 있는 경기를 3차례 치렀다. 호날두는 난타전 양상이었던 나폴리전 4-3 승리에 한 골을 넣어 일조했지만 투톱이 정착된 뒤 치른 인테르밀란과 AC밀란전에서는 득점도, 도움도 없었다. 두 경기에서 디발라는 2골, 이과인은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호날두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감당하기 위해 유벤투스는 다른 포지션의 경쟁력을 다소 희생했다. 이로 인해 레알 시절처럼 호날두에게 꾸준히 킬 패스를 제공할 수 있는 동료가 부족하다.

사리 감독은 호날두가 골만 넣는 것을 넘어 경기에 더 자주 관여해야 하는 판을 짰다. 4-3-1-2 포메이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는 수비적인 선수로 채우고, 투톱이 폭넓게 움직이며 경기에 자주 기여해야 하는 방식이다. 지난 시즌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과 마찬가지로 호날두가 에이스 노릇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호날두는 리오넬 메시처럼 플레이메이킹과 득점을 모두 해내는 스타일의 리더가 아니라, 더 꾸준한 큰 경기 득점력으로 가치를 증명해 온 스타일이다. 호날두의 실력은 서서히 떨어져가고 있지만 전술적인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

호날두는 7일 로코모티브모스크바 원정에 이어 밀란전까지 두 경기 연속 교체 아웃됐다 .호날두에게 교체 아웃은 매우 낯선 일이다. 호날두는 UCL에서 지난 3시즌 동안 35경기에 선발 출장했는데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다. 경기 막판이 될수록 더 득점을 갈망하는 것이 호날두의 특징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늘 풀타임을 뛰어야 했다. 그러나 호날두의 몸은 익숙한 플레이 패턴을 이제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갈수록 예민한 성격을 보이는 것도 초조함의 발로일지 모른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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