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탈리아 대표팀이 수비축구와 결별을 선언했다.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축구를 시도하고 있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의기양양하게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만이 나아갈 길”이라고 선언했다.

이탈리아는 16일(한국시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제니차에 위치한 스타디온 빌리노 폴례에서 ‘유로 2020’ 예선 J조 9차전을 갖고 3-0으로 승리했다. 9전 전승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지난 7라운드 당시 7전 전승으로 J조 1위를 확정하며 전체 두 번째로 일찍 본선에 진출한 바 있다.

이탈리아는 예선이 시작되기 직전 2018년 11월 치른 미국전도 승리했다. A매치 10연승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기존 기록인 9연승은 1938년부터 1939년에 걸쳐 세웠다. 당시 이탈리아는 전설적인 감독 비토리오 포초가 지휘하고 있었으며, 1938년 월드컵 우승이 포함된 기록이다. 이번 기록은 무려 80년 만에 경신됐다.

이탈리아는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태에서도 동기부여 요소가 남았다. 19일(한국시간) 열리는 아르메니아와의 마지막 유로 예선 경기까지 승리하면 10전 전승으로 통과하는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9경기 동안 28득점 3실점을 기록했다. 최다득점자가 단 4골(안드레아 벨로티)에 불과할 정도로 득점이 고루 분산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3골을 넣은 로렌초 인시녜, 2골을 넣은 니콜로 바렐라,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 조르지뉴, 마르코 베라티 등이 득점을 분담했다. 득점자가 16명이나 된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4-3-3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토털풋볼’ 성향을 보이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상대로도 조르지뉴, 바렐라, 산드로 토날리를 기용해 테크닉과 활동량이 뛰어난 중원을 구성했다. 최전방의 벨로티를 베르나르세스키와 인시녜가 측면에서 지원하게 했다. 오른발잡이 인시녜가 왼쪽에서, 왼발잡이 베르나르세스키가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공격했다. 그러면 좌우 풀백인 에메르손과 알레산드로 플로렌치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만치니 감독은 10연승을 거둔 뒤 “내가 감독으로서 가진 목표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팬들이 다시 이탈리아 대표팀을 찾게 만들고, 선수들이 승리를 추구하는 축구에 적응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만치니 감독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 맨체스터시티(2009~2013)를 비롯해 갈라타사라이, 제니트상트페테르부르크 등 타국 명문팀을 거쳤다. 맨시티에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을 차지한 뒤 감독으로서 하향세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현재까지는 이탈리아를 순항시키고 있다.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수동적 축구’를 벗어나 공격적이고 경기 지배를 중시하는 축구 스타일로 변모하는 중이라는 것이 만치니 감독의 설명이다. “우리는 수비 후 역습을 통해 이기고 싶지 않았다. 경기 주도권을 쥐고 통제하고자 했다. 그렇게 할 때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지만 선수들은 내 생각을 빠르게 받아들여줬다.”

또한 전방압박과 공 탈취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만약 공을 빠르게 되찾을 수 있다면 수비가 실점위기를 덜 겪게 된다. 뻔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게 압박 축구의 진실이다.”

위험부담을 극도로 꺼리던 이탈리아 축구가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하면서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만치니 감독은 새로운 선수들을 기용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체격이 작아 기존 감독에게 배제당하다시피 했던 테크니션 미드필더 조르지뉴는 만치니 감독 아래서 주전급으로 출장 중이다. 만치니 감독이 이번 2연전에 소집한 선수 중 11명이 A매치 경력 10경기 이하일 정도일 정도로 선수단 물갈이가 빠르다. 그밖에도 수비수 잔루카 만치니와 크리스티아노 피치니, 미드필더 스테파노 센시, 공격수 모이세 켄과 케빈 라자냐 등 프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에게는 큰 폭으로 기회를 주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금 확실한 스타 선수가 없는 시대를 헤쳐나가야 한다. 만치니 감독은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대거 성장시켜 유로 본선에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젊고 공격적인 팀을 구상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이탈리아 특유의 끈끈한 축구가 가진 장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베테랑 수비수 레오나르도 보누치는 “우린 여전히 스페인, 프랑스, 독일 같은 팀에 비하면 경험 부족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유럽 최고 선수들 역시 우리 팀에는 없다”고 인정했다. 보누치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성과였던 유로 2012 준우승을 주전으로서 경험한 유일한 현역 대표다. 베테랑들이 이탈리아다운 장점을 유지하는 가운데 젊은 피의 패기를 더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현재 목표다.ㅣ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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