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수원] 김정용 기자= K리그 대표 라이벌전 ‘슈퍼매치’는 역대 최악의 기대 속에서 시작됐다. 화려하고 웅장한 대결은 애초에 불가능했지만, 대신 돌아온 투지와 기대 이상의 박진감이 있었다. 지금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4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2 2020’ 10라운드를 치른 수원과 서울이 3-3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전반전에 수원이 3-1로 달아났지만, 후반 서울이 두 골을 추격해 무승부를 만들었다. 경기 후 서울은 8위, 수원은 10위로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렀다.

두 팀의 대결 역사상 가장 초라한 처지에서 벌어진 맞대결이다. 순위뿐 아니라 선발 선수들의 면면도, 이번 시즌 보여주고 있는 경기의 재미도 역대 최악이었다. 게다가 무관중이었다. 경기 내용이 지루할 때도 슈퍼매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던 두 팀 서포터의 한국 최대 규모 응원전이 없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뜻밖에도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은 이번 시즌 기복이 있는 한승규와 알리바예프 모두 많이 뛰고 기술까지 보여줬다. 박주영의 파트너 공격수 조영욱은 후반 35분 교체될 때까지 특유의 활동량과 집중력으로 모처럼 장점을 보여줬다. 수원은 이날 서울보다 공을 더 오래 쥐어야 했는데, 이번 시즌 경기 중에서는 비교적 효과적인 공격 전개를 여러 번 보여줬다. 여전히 수원의 빌드업은 답답했지만 속공으로 빠르게 전개하며 이득을 보는 장면도 여러 번 나왔다.

냉정하게 볼 때 6골이나 터진 가장 큰 요인은 두 팀의 불안한 수비다. 서울은 윤영선이 새로 영입된 뒤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수원은 경기 막판 흔들리며 실점을 내주는 것이 고질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최근 경기력을 감안하면, 상대 수비가 아무리 약해도 다득점을 하기 힘들어하는 팀들이었다. 특히 서울은 바로 앞 9라운드에서 최약체 인천유나이티드를 상대로도 가까스로 한 골을 넣고 승리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하면 두 팀 선수들의 집중력은 확실히 칭찬할 만했다.

시즌 초 집중력 문제를 가혹하게 지적받았던 타가트는 시즌 첫 멀티골을 기록하며 마침내 기대에 부응했다. 수원의 김건희, 서울의 조영욱과 고광민 모두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이들의 골 모두 높은 집중력에서 나왔다. 특히 조영욱은 끈기와 과감함이라는 자신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였다.

가시적인 지략 싸움도 있었다. 수원은 막판 실점에 가려 있지만, 경기 초반 경기력은 꾸준히 개선되는 중이다. 이날도 선발 라인업의 ‘판’은 이임생 감독이 더 잘 짜 왔다. 최용수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함께 미드필더 한승규를 왼쪽 윙어로 전진시켜 3-5-2에서 3-4-3 포메이션으로 전환한 것이 승리 요인이라고 자평했다. 수비 불안을 겪는 윤영선을 빼는 대신 스리백의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위치를 바꿔주는 등의 조치도 효과를 봤다.

이 경기의 마무리는 ‘예능’의 결정판이었다. 추가시간 종료 전 약 1분 동안 두 팀이 번갈아 골대를 맞히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수원 고승범의 슛이 먼저 굴절된 뒤 골대에 맞았고, 곧 반격한 서울은 한승규의 슛이 노동건의 손과 골대를 연달아 맞고 무산됐다. 이 슛 직후 경기가 끝났다.

슈퍼매치가 현재 처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오락이었다. 결과는 두 팀 모두 승점 1점씩 가져갔을 뿐이고, 여전히 강등권 근처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기력한 경기였다면 새로운 별명답게 ‘슬퍼매치’가 됐을 수도 있지만, 두 팀이 모두 몰락한 세계관에서는 이 정도가 최강자들의 싸움이었다. 대체로 침울한 표정을 하는 이임생 감독조차 이 경기에서는 여러 번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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