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측면 수비수, 풀백에 경기 상황에 따라 측면 공격수, 날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현대 축구 전술에서 일반적인 일이다.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이 두 명의 수비수 사이로 내려오고, 풀백은 윙백의 자리로 전진해 공격에 가담한다. 

공격진의 좌우 측면에 자리한 선수들은 중앙으로 들어가 직접 골문을 노린다. 이로 인해 오른발 잡이가 왼쪽, 왼발 잡이가 오른쪽에 서는 반대발 윙어 기용은 흔한 일이 되었다. 왼쪽 측면 지역에서 사이드 라인을 타고 들어가 크로스를 시도하는 플레이는 이제 풀백의 임무에 더 가까워 졌다. 

최근 축구의 전술적 이슈는 풀백의 미드필더화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이에른뮌헨을 지휘하면서 러이트백 필리프 람을 중앙 미드필더로 이동시켰고, 레프트백 다비드 알라바는 센터백 자리로 옮긴 뒤 중앙 지역에서 공격 전개 역할을 하도록 했다. 맨체스터시티에 부임한 뒤에도 공격 전개 상황에서는 좌우 측면 공격수를 사이드 라인 쪽으로 넓게 벌리고 두 명의 풀백을 가운데로 좁혀 들어와 빌드업에 관여하게 했다.

이런 모습은 FC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 그리고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목격할 수 있는 일이 됐다. 본래 중앙 미드필더였던 세르지 로베르토는 라이트백으로 자리를 바꾼 이후 중원 플레이에 가담하는 풀백으로 경기 중 다양한 전술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열쇠 역할을 했다. 레알의 다니 카르바할도 직접 측면을 타고 오버래핑 하는 플레이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중앙으로 들어와 패스 플레이에 빈번하게 관여한다.

#풀백은 어떻게 미드필더를 잘 할 수 있나

현역 시절, 본래 레프트백 포지션을 봤으나 라이트백은 물론이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한국 축구계에서 필리프 람과 비교할 수 있는 선수다. 이영표는 ‘풋볼리스트’와 만났을 때 풀백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고, 전술적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풀백의 비중이 커진 것은 예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다. 이미 내가 현역으로 뛰던 10여년 전부터 효율성이 뛰어난 포지션이 됐다. 현대 축구에서 상대를 무너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점은 양 사이드다. 측면을 무너트리고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쉽다. 이게 풀백 전술의 핵심이다. 예전에는 축구를 약간 못하는 선수가 뒤로 빠져서 섰다. 결국 중앙을 두텁게 세우니 사이드를 공략하는 게 중요해졌다. 반대로 우리는 사이드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중원 압박이 심화된 현대 축구에서 측면 공략, 그리고 측면 제어가 승패의 열쇠다. 측면에서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해야하는 역할이 바로 풀백에게 있다. 이영표 위원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그러다 보니 사이드에 있는 선수들이 수비력도 좋아야 하고, 상대의 사이드도 공격해야 한다. 상대의 공격 타깃이 되면서도 상대를 허물어야 하는 입장이다. 윙백이 수비적으로 강하고, 공격 서포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경기가 된다. 수비적으로나 공격적으로 다방면에 능해야 한다. 속도도 갖추고, 패싱력, 공격력, 크로싱에 수비 커버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멀티 플레이어 기능을 요구하게 되었고, 점점 그런 선수들이 나타나고 있다.”   

조직적으로 강해진 중원 압박이 풀백 포지션의 선수에게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게 되었고, 풀백 포지션의 선수들은 그 기준에 맞춰 진화했다. 그렇게 부여된 기준과 능력은 풀백 선수들이 중앙 미드필더 지역으로 이동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옵션이 되도록 만들었다. 우수한 풀백은 기술적으로나 운동 능력 면에서 뛰어나며 공수를 오가는 과정에서 판단력까지 갖췄다. 그런 선수라면 중앙 지역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제 윙백은 패싱력이 좋고 볼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미드필더와 역할이 겹친다. 소유 능력이란 드리블로 볼을 빼앗기지 않는 능력도 있지만, 동료에게 안전하게 연결하는 역할로도 볼 수 있다. 나 역시 수비형 미드필더를 본 적이 있다. 볼을 연결할 수 있는 선수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선수한테 가면 공이 연결이 되는구나라는 안정감을 준다면 전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미드필더 역할은 옵션, 여전히 중요한 건 ‘측면 수비’

그러나 이영표는 모든 풀백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잘 할 수는 없으며, 모든 풀백이 수비형 미드필더가 해야하는 기능적 부분을 모두 수행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술적으로 활용할만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풀백이 해야하는 또 하나의 역할은 아니다. 전술적으로 동시에 역할이 가능한 선수라면 쓸 수 있는 것이지 꼭 해줘야 하는 부분은 아니다.” 이영표는 “풀백의 첫 번째 중요한 점은 수비력이다. 상대 공격에 무너지지 않는 개인적인 수비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측면 수비수로서 포지션의 본업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2012 런던올림픽'과 '2014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했고, 퀸즈파크레인저스 시절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를 경험한 윤석영은 풀백으로서 다양한 능력을 갖추는 것에 앞서 수비력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세계 무대에 도전자의 입장으로 있는 한국 축구의 상황에서는 기본 내실부터 다지고 다음 단계를 봐야 할 필요도 있다.

“올림픽을 경험하고, 월드컵을 경험해보니 느낀 점은, 세계적인 강팀과 상대를 할때는 풀백이 수비적으로 더 강인한 모습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2014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도 그렇고, '2002 한일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도 수비가 강했다. 상대 공격수들에게 지지 않는 끈질김이 필요하다. 비슷한 팀이나 약팀을 상대할 때는 과감하게 오버래핑을 나갈 수도 있고, 판단을 빨리 할 수 있지만 강팀과 경기를 할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그런 판단력이 중요하다.”

물론 강팀을 상대로 뒤에만 머물러 있는다고 수비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윤석영은 “공격과 수비를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상대 공격수가 자유롭게 공격에 나설 수 없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언제 올라가고 내려올지 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윤석영은 더불어 프리미어리그를 경험하면서 “태클의 맛을 느꼈다”고 했다. 경기 전개 속도가 빠른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거침 없이 들어오는 측면 공격수를 상대해야 한다. 판단의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 그런 경기를 자주 하다 보면 경기를 읽는 눈이 좋아진다. 더 정밀한 크로스 패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킥 역습도 추가적으로 해야 했다. 킥에 대한 꾸준한 역습, 패스의 질에 대한 고민은 미드필더의 자질 중 하나인 패싱력의 발전으로도 이어진다.

#풀백의 미드필더 변신이 가져다 주는 또 다른 효과

보루시아도르트문트에서 뛰고 있는 박주호 역시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수다. 본래 측면 공격수였다가 일본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결국 레프트백으로 유럽에서 성공한 뒤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박주호는 여러 포지션을 경험한 점이 자신을 전술적으로 더 뛰어난 선수가 되도록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박주호는 흔히 공격적인 풀백들에게 붙는 ‘돌아오지 않는 풀백’이라는 표현에 대해 풀백 포지션의 선수 혼자 만의 책임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현대 축구는 사이드백에게 오버래핑을 요구한다. 오버래핑을 나갔을 때 수비형 미드필더가 자리를 조금만 지켜주면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이 맞는 팀에서라면 사이드백이 많이 올라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대일에서 진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올라간 상태에서 공간을 내주는 문제는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커버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사이드백이 올라가지 못하고 뒤에서 커버하는 플레이 밖에 할 수 없다.”

전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개별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다. 오버래핑이 좋은 풀백들의 수비력이 지적 받는 부분에서 박주호는 다른 포지션과의 연계가 얼만큼 잘되고 있는 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간을 (상대 역습에) 맞는 것을 무서워하게 되면 안된다. 나 역시 그런 공간에 대해 지적을 받고 나서 수비적으로 플레이가 변하게 된 적이 있다. 올라가면 공간을 계속 내준다. 솔직히 나가긴 나가야 하는데 공간을 내준다면 어쩔 수 없다. 상대 팀도 그 부분을 노린다. 사이드 선수 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드필더와 양쪽 사이드 선수가 모두 적절히 커버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미드필더를 볼 때 수비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앞에서 더 뛰어줄 수 있는 것 같다.”

미드필더로도 빼어난 모습을 보인 바 있는 박주호는 풀백과 미드필더는 분명 다른 포지션이라고 했다. “적응이 됐다기 보다는 해야하는 상황이라서 한 것이다. 좋은 모습을 보인 적도 있지만 전문적인 미드필더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워가는 입장에서 하다 보니 재미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수비수는 (수비 상황에서) 데미지가 강하다. 그게 무섭거나 감수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미드필더는 그런 점에서 편한 게 있다.” 

#레프트백이 더 주목 받는 이유, 라이트백이 되기 어려운 이유

라이트백에 비해 상대적으로 레프트백이 주목 받는 경우가 많다. 박주호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희소가치 때문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오른쪽에 비해 유명하거나 강한 선수가 왼쪽에는 적다. 세계적으로 그런데, 우선 왼발 잡이 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특징적으로 왼발 잡이 수비수가 부족하다. 그래서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다.”

본래 오른발 잡이였던 이영표는 왼쪽을 주 포지션으로 삼고 라이트백으로도 종종 뛰었다. 좌우 측면을 모두 볼 수 있는 선수라면 그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왼발잡이인 박주호와 윤석영은 라이트백 포지션을 보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왼발의 달인'으로 불리는 염기훈도 "오른발 연습을 더 해봤는데 잘 안되더라. 차라리 왼발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쪽이 쉽더라"며 평생 굳어진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고백한 바 있다. 

“솔직히 현실적으로 아주 힘든 부분이다. 영표 형처럼 오른발 잡이는 왼발도 어느 정도 쓰는 선수가 많다. 그래서 양쪽을 볼 수 있다. 왼발잡이들은 거의 오른발 못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왼발 잡이가 오른쪽에 서는 경우가 별로 없다. 물론 공격 부분에서는 많이 왼발잡이가 오른쪽에 서는 선수가 많다. 수비수는 오른발을 잘 못쓴다는 압박감이 있고, 사이드에서 볼 배급을 해야 하는데 상대선수가 다가왔을 때 각도를 내고 코스를 잡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가끔 오른쪽에 서게 되면 어색하다.”  (박주호)

“왼쪽 라인에서 수비를 하다가 오른쪽으로 가면 자세를 바꿔서 수비해야 한다. 약간 불편하다. 자세라는 것이 완전히 반대로 뒤바뀌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다. 양쪽 다 소화할 수 있는 풀백들도 있다. 나 역시 청소년 대표 때 오른쪽을 본 적이 있다. 너무 옛날이지만, 볼 수 있기는 하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전 이영표 선배님도 오른쪽 왼쪽을 다 보셨다. 물론 그만큼 기량이 좋아야 할 것이다.” (윤석영)

희소 가치로 본다면 풀백 중에서도 레프트백의 가치가 크다. 라이트백도 볼 수 있고,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선수라면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축구 경기에서 이적료 혹은 연봉 신기록을 경신하는 것은 대부분 공격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었다. 이영표는 이제 풀백도 특급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라고 했다.

“굉장히 가치가 높아졌다. 모든 포지션 선수들이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풀백은 옛날에는 수비만 했고, 공격도 서브만 했다. 이제 풀백도 얼마든지 팀의 ‘메인’이 될 수 있다. 사실 예전에는 풀백이 팀 최고 스타가 되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도르트문트에 갔을 때 수당도 제일 많이 받고 연봉도 팀내 ‘탑4’ 안에 들어다. 도르트문트가 그때 샬케04와 경쟁해서 날 데려갔기 때문에 나에게 많은 돈을 줘야 했다. (웃음) 내가 PSV에서 토트넘으로 갈때도 히딩크 감독이 남아달라며 제시한 마지막 제안은 PSV에서 ‘탑3’ 안에 드는 연봉이었다. 그때 판 보멀, 로번, 케즈만이 다 있던 때다. 풀백에게도 그런 제안을 할 정도로 비중이 어마어마해진 것이다. 대표팀에서도 풀백이 이슈인 적은 없었다. 이제는 큰 이슈다. 포지션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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